[프리즘] 대선 이슈로 커지는 불법 입국
지난 24일 연방정부는 불법 입국자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27일 고위직 여러 명이 멕시코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크리스마스 바로 전날인 데다 방문자가 국무부와 국토안보부 장관, 백악관 국토안보보좌관이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는 행보였다. 불법 입국 문제가 돌발적인 사안이 아닌 점으로 볼 때 대통령선거 국면과 연관됐을 개연성이 적지 않다. 최근 불법 입국자 문제를 둘러싼 가장 큰 논란은 공화당 대선 주자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트럼프는 지난 17일 뉴햄프셔 선거행사에서 “불법 이민이 우리나라의 피를 더럽히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의 감옥에서, 정신병원에서 오고 있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특히 피를 오염시킨다는 표현이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등장한다는 지적과 함께 대선 국면에서 극우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 의도는 바이든 행정부의 불법 입국자 허용 정책을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중미와 국경을 접한 텍사스주 등이 불법 입국자를 다른 주로 보내면서 북부 지역의 도시에서는 수용 한계와 비용 문제를 놓고 반발이 일고 있다. 시카고시는 올해 초에 이미 수용한계를 선언하며 이송 버스 진입을 금지했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지난 9월 “끝이 안 보이는 이민자 문제는 뉴욕시를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불법 입국자를 보내는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를 향해 “텍사스의 미치광이 때문에 문제가 시작됐다”고 극렬하게 비난했다. 뉴욕시는 불법 입국자 대처에 3년간 120억 달러의 재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뉴욕이 감당 못 하면 다른 도시는 더 힘들 것이다. 특히 노숙자 문제가 심각한 도시는 더 큰 재정 압박을 느끼게 돼 대선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이 문제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은 시기도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압도적인 지지도가 흔들리고 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의 지지율이 10% 중반대를 넘어서며 대항마로 부상하더니 22일 발표한 아메리칸 리서치 그룹의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는 29%까지 올라섰다. 트럼프 지지율 33%와 오차범위 안으로 들어서며 대항마에서 경쟁자로 커졌다. 다음날인 23일엔 트럼프가 헤일리에게 러닝메이트를 제안하는 방안을 측근과 상의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트럼프로서는 헤일리와 격차를 다시 벌려놓아야 러닝메이트 제안도 힘을 얻는다. 이민 문제는 지지율 격차 확대에 필요한 선명성을 드러내기 적합한 이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나온 국무장관 등의 멕시코 방문 발표는 조 바이든 대통령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휘발성 큰 대선 이슈를 사전에 차단하는 조처로 해석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연방정부는 이민 문제를 쿼터제도로 조절했다. 하지만 불법 이민자들이 1만 명 단위로 국경에 몰려들자 국경 봉쇄냐 수용이냐는 일차적 결정을 내리는 문제로 바뀌었고 정부 부담은 더 커졌다. 이미 지난 9월 20일 연방정부는 7월 31일 이전에 입국한 베네수엘라 이주민 47만2000명에 강제추방 면제와 취업 허가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줄어들 것처럼 보이던 불법 입국자도 이달 들어 다시 늘고 있다.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미국-멕시코 국경의 이민자 수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급증한다며 당장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25일에도 중남미 이민자 1만여 명이 멕시코 남부에서 미국 국경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불법 입국자가 줄어들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거의 없다. 하루 5.5달러 이하로 생활하는 빈곤층 비율은 2012년과 2022년 사이 중남미에서 크게 늘어 칠레와 우루과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에서 크게 악화했다. 그중 베네수엘라는 29%에서 90%로 폭증했고 아르헨티나도 4%에서 36%로 급증했다. 불법 입국의 가장 현실적이고 단기적인 해법은 미국으로 오는 통로에 위치한 멕시코의 협조다. 연말에 고위직들이 멕시코로 급히 달려간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불법 입국자 문제는 상존하고 경제 상황이 악화라도 하면 언제든 대선 핵심 이슈로 튀어나올 수 있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대선 이슈 불법 입국자 대선 이슈 불법 이민